2026년 04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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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회·민족 한마당] 모두가 외면한 뤄쑹디 홀로 지켜온 교사…40년 후 中 전인대 대표로

  • 2026년 04월 02일

중국 서남부 깊은 산속에는 한때 지도에서조차 이름을 찾을 수 없었던 마을이 있다. 바로 ‘뤄쑹디(落松地)’다. 베이징에서 출발하면 비행기로 3시간 이상, 다시 자동차로 5시간 이상을 달려야 비로소 이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뤄쑹디는 윈난(雲南)성 원산(文山) 좡(壯)족먀오(苗)족자치주 광난(廣南)현에 자리해 있다.

이곳은 한때 ‘한센병 마을’이었다. 1950년대, 한센병 환자를 격리하고 치료하기 위해 집중 치료 지역으로 선정됐다. 이후 180여 명의 한센병 환자와 그 가족들이 거주하게 됐다. 그로부터 수십 년간 외지인들은 이곳을 극도로 기피했으며 마을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를 꺼렸다.

1986년, 스무 살의 좡족 청년 눙자구이(農加貴)는 교사가 필요한 곳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곳은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질색하는 ‘한센병 마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눙자구이는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 마을 안으로 발을 들였을 때 그는 할 말을 잃었다. 흙벽돌로 지은 교실은 사방이 뚫려 바람이 들이쳤고 12명의 아이들은 임시로 빌린 좁은 보건실 한 칸에 모여 있었다. 아이들의 부모 대부분은 병으로 몸이 불편해진 장애인이었다

결국 그는 마을에 남았다. 그렇게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학교는 마을에서 내어준 20여㎡짜리 흙벽돌 방 한 칸이 전부였다. 책상은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낡은 가구로 대신했고 칠판은 먹물로 검게 칠한 나무판자였다. 분필이 떨어지면 석회 덩어리로 대신했다. 동료 교사 한 명 없이 혼자서 전 학년의 모든 과목을 가르쳤다. 그는 교사뿐만 아니라 조리사와 보육사 역할까지 도맡아 몸이 불편한 마을 주민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돌봤다. 

열악한 환경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외부로부터의 냉대였다. 진내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그가 ‘한센병 마을’에서 왔다는 말을 들은 다른 교사들은 멀찌감치 자리를 피했다. 그는 늘 혼자 구석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마을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머리를 맞댔다. “우리 마을에 새 이름을 붙여봅시다.” 그 지역에서는 땅콩이 많이 났는데 땅콩을 현지 소수민족 언어로 ‘뤄쑹(落松)’이라 불렀다. ‘껍질은 단단하고 열매는 달콤하다’는 뜻이다. 그는 아이들이 거친 세상 속에서도 강인하게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바랐다. 그렇게 ‘뤄쑹디’라는 이름이 태어났다

오늘날 뤄쑹디의 모습은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학교에는 새 교사들이 찾아왔다. 젊은 교사들이 오면서 아이들의 교육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눙자구이가 수십 년간 홀로 지켜온 학교에도 마침내 동료가 생겼다. 학교는 시설 면에서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한때 다른 이들과 같은 자리에 앉지도 못했던 그 청년은 이제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가 됐다. 그는 변방 교육의 목소리를 직접 베이징까지 전했다

전인대 대표로서 눙자구이의 시선은 시골 작은 학교 하나를 넘어 더 넓은 변방의 소수민족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올해 전국 양회에서 그는 변방 소수민족 지역의 유아 교육, 농촌 소규모 학교의 발전에 관한 두 가지 건의안을 들고 회의장에 들어설 예정이다.

그는 보다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농촌 교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인센티브 체계를 완비해 주거와 자녀 교육 등 현실적인 걱정거리를 해소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 제공: CMG